강약약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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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655회 작성일 23-01-13 16:43본문
1. 개요[편집]
2. 상세[편집]
해당 단어의 의미 그대로, 강자의 앞에서는 을의 처지를 표방하며 약하게 굴거나 설설 기지만, 약자의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도를 전환해서 강하게 나가거나 꼰대질이나 갑질을 해대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을 빗대거나 비꼴 때 주로 쓰는 말이다. 현실에선 묻지마 범죄(묻지마 살인, 묻지마 테러 포함), 학교폭력[1][2], 가정폭력[3], 군대의 선후임 관계[4] 등의 사례에서 자주 나타난다. 그 외에 마녀사냥이나 사이버 불링 등도 이런 사례의 매우 고질적인 예시다.[5]
역사적으로 보면, 수많은 혁명은 이러한 강약약강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하였다. 먼저 미국 독립 혁명의 경우에 영국 정부가 가장 만만한 미국 13개 식민지에게 과도한 징세를 청구하면서 촉발되었다. 프랑스 혁명의 경우 앙시앵 레짐이라 불리우는 구체제의 모순이 심화된 결과였다. 상당히 복잡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결국 강한 고위층에게는 약하게 조치하고 약한 하위층에게 가혹하게 착취하는 구조였다.
정치권에서 보면 정치인들이 투표와 지지율을 위해 국민들 앞에서 뭐든 할 것처럼 굴다가 권력 얻으면 입 싹 씻는 행태 등이 그 예시. 사실 이 외에도 사례는 매우 무궁무진하다.[6]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는 관용어가 있어 이를 줄인 단어로 볼 수 있다.
사실 졸렬, 야비함, 비열, 비겁함/비겁하다, 치졸함, 소인배 등 이 말의 의미를 포함하는 기존의 말들은 많다. 그래도 인터넷 상이나 SNS 상에선 제법 자주 쓰이는 경향이 있다.
인간 혹은 동물의 본성 중 하나인 이기심이나 생존본능과 맞닿아 있는 행위라는 분석이 있다. 자기 입장을 챙기고 살아남기 위해 강자 앞에선 강자의 비위를 맞추거나 강자의 잘못을 외면하는 등 '약하게' 굴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상대적/절대적 약자 앞에서는 괜히 위세부리면서 강하게 나선다는 것.[7] 특히 인간말종에 속하는 케이스들이 이런 행태를 자주 보이는 편이다. 또 실명이 아닌 익명이 보장되는 넷상에서 더 자주 발발하는 편.
심지어는 사회적 약자에 속해있을 땐 착해보이던 사람들이, 조금의 권력을 쥘 경우 악한 본성을 드러내거나 권력 맛에 취해 타락하면서 강약약강의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괜히 사람의 본질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권력을 쥐어줘보라는 말이 나오는게 아닌 셈.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대상과도 관련이 있다. 보상심리에 의거해 후임이나 아랫사람을 갈궈대는 똥군기를 부려대는 사람들의 경우 자기 전임자나 상사에게 주로 갈굼당한/갈굼당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윗사람이나 전임자는 자기에게 강자 포지션이었으므로 건드리지 못하다가 자기에게 약자인 후임/아랫사람을 갈궈대는 식. 이런 보상심리에 의거한 똥군기는 하는 사람에겐 나름의 '보상'을 스스로 주는 행위에 해당하다보니 조직 문화에서 대물림이 되었으면 되지 없어지기 힘들다. 아동 학대도 마찬가지로 아동 학대의 가해자는 대다수가 친부모인데 이 친부모 또한 그의 부모(아동 입장에선 조부모)로부터 아동 학대를 당했던 경우가 많다.
이중잣대를 유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는데 같은 사건에 같은 커뮤니티에서 팬덤의 규모에 따라 비판받는 잣대와 또는 그 정도가 달라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요컨대 트위터의 기능인 리트윗은 젠더 관련 이슈에서 일부 남초 커뮤니티들은 항상 그 행위를 동의라는 잣대를 시전했고 그 리트윗 한사람을 메갈로 몰고 당사자의 해명에도 의심을 품거나 거짓말 한다고 몰아갔다. 그런데 홍민기(프로게이머)의 페미니즘 리트윗 관련 논란에서 같은 논란을 겪고 역시 당사자는 해명을 했는데도, 평소라면 과거 여러 사건에서 그런 해명이 씨알도 안먹혔던 같은 사이트에서 이상할 정도로 홍민기의 리트윗에 대한 해명은 곧이 곧대로 믿는 여론이 많다. .##[8] 지적하는 사람에게 너보다 잘나가서 배아파서 그러냐는 식의 비아냥은 덤.
'분노조절장애'에 대한 오해 중 잘 알려져 있는 '자기보다 센 놈 앞에선 잘 조절된다'의 실체가 이 강약약강이다. 실제 의학적 의미의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환자는 강강약강이다. 다시 말해서 상대가 누구든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 강약약강을 두고 '선택적 분노(조절장애)', 혹은 '분노조절잘해'라고 비꼬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사람은 오히려 자신을 정상이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병을 숨기려 든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분노 표출은 임의로 선택되어서 나오는게 아니라 본인도 통제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정신질환으로 간주된다.
어떻게 보면 이런 유형이 생기는 이유는 서열과 약육강식, 상명하복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왕왕 있다. 사람도 다 개체마다 서열이 있고 사회적 지위와 계급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현상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
역사적으로 보면, 수많은 혁명은 이러한 강약약강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하였다. 먼저 미국 독립 혁명의 경우에 영국 정부가 가장 만만한 미국 13개 식민지에게 과도한 징세를 청구하면서 촉발되었다. 프랑스 혁명의 경우 앙시앵 레짐이라 불리우는 구체제의 모순이 심화된 결과였다. 상당히 복잡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결국 강한 고위층에게는 약하게 조치하고 약한 하위층에게 가혹하게 착취하는 구조였다.
정치권에서 보면 정치인들이 투표와 지지율을 위해 국민들 앞에서 뭐든 할 것처럼 굴다가 권력 얻으면 입 싹 씻는 행태 등이 그 예시. 사실 이 외에도 사례는 매우 무궁무진하다.[6]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는 관용어가 있어 이를 줄인 단어로 볼 수 있다.
사실 졸렬, 야비함, 비열, 비겁함/비겁하다, 치졸함, 소인배 등 이 말의 의미를 포함하는 기존의 말들은 많다. 그래도 인터넷 상이나 SNS 상에선 제법 자주 쓰이는 경향이 있다.
인간 혹은 동물의 본성 중 하나인 이기심이나 생존본능과 맞닿아 있는 행위라는 분석이 있다. 자기 입장을 챙기고 살아남기 위해 강자 앞에선 강자의 비위를 맞추거나 강자의 잘못을 외면하는 등 '약하게' 굴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상대적/절대적 약자 앞에서는 괜히 위세부리면서 강하게 나선다는 것.[7] 특히 인간말종에 속하는 케이스들이 이런 행태를 자주 보이는 편이다. 또 실명이 아닌 익명이 보장되는 넷상에서 더 자주 발발하는 편.
심지어는 사회적 약자에 속해있을 땐 착해보이던 사람들이, 조금의 권력을 쥘 경우 악한 본성을 드러내거나 권력 맛에 취해 타락하면서 강약약강의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괜히 사람의 본질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권력을 쥐어줘보라는 말이 나오는게 아닌 셈.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대상과도 관련이 있다. 보상심리에 의거해 후임이나 아랫사람을 갈궈대는 똥군기를 부려대는 사람들의 경우 자기 전임자나 상사에게 주로 갈굼당한/갈굼당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윗사람이나 전임자는 자기에게 강자 포지션이었으므로 건드리지 못하다가 자기에게 약자인 후임/아랫사람을 갈궈대는 식. 이런 보상심리에 의거한 똥군기는 하는 사람에겐 나름의 '보상'을 스스로 주는 행위에 해당하다보니 조직 문화에서 대물림이 되었으면 되지 없어지기 힘들다. 아동 학대도 마찬가지로 아동 학대의 가해자는 대다수가 친부모인데 이 친부모 또한 그의 부모(아동 입장에선 조부모)로부터 아동 학대를 당했던 경우가 많다.
이중잣대를 유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는데 같은 사건에 같은 커뮤니티에서 팬덤의 규모에 따라 비판받는 잣대와 또는 그 정도가 달라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요컨대 트위터의 기능인 리트윗은 젠더 관련 이슈에서 일부 남초 커뮤니티들은 항상 그 행위를 동의라는 잣대를 시전했고 그 리트윗 한사람을 메갈로 몰고 당사자의 해명에도 의심을 품거나 거짓말 한다고 몰아갔다. 그런데 홍민기(프로게이머)의 페미니즘 리트윗 관련 논란에서 같은 논란을 겪고 역시 당사자는 해명을 했는데도, 평소라면 과거 여러 사건에서 그런 해명이 씨알도 안먹혔던 같은 사이트에서 이상할 정도로 홍민기의 리트윗에 대한 해명은 곧이 곧대로 믿는 여론이 많다. .##[8] 지적하는 사람에게 너보다 잘나가서 배아파서 그러냐는 식의 비아냥은 덤.
'분노조절장애'에 대한 오해 중 잘 알려져 있는 '자기보다 센 놈 앞에선 잘 조절된다'의 실체가 이 강약약강이다. 실제 의학적 의미의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환자는 강강약강이다. 다시 말해서 상대가 누구든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 강약약강을 두고 '선택적 분노(조절장애)', 혹은 '분노조절잘해'라고 비꼬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사람은 오히려 자신을 정상이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병을 숨기려 든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분노 표출은 임의로 선택되어서 나오는게 아니라 본인도 통제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정신질환으로 간주된다.
어떻게 보면 이런 유형이 생기는 이유는 서열과 약육강식, 상명하복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왕왕 있다. 사람도 다 개체마다 서열이 있고 사회적 지위와 계급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현상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
3. 옹호적 견해[편집]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는 말이 겉보기엔 좋게 들리겠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동물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염세주의와 인간 비판이 생겨난 이유를 떠올려보자. 강약약강은 모든 동물에게 내재된 생존 본능의 일환이며, 인간도 이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애초에 자연에서도 포식자가 사냥감인 약자를 보면 가차없이 죽이고 잡아먹을지언정 자신보다 덩치가 크거나 힘이 쎈 상대방을 만나면 겁을 먹고 도망친다.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일대일 상황에서 토끼는 하이에나를 이길 수 없고, 하이에나는 사자를 이길 수 없고, 사자는 코끼리를 이길 수 없다. 이길 수 없는 상대를 건드려 봤자 자신이 다치거나 죽을 뿐이므로 건드리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괴롭히고 잡아먹는 대상은 자신보다 약한 것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초에 자연에서도 포식자가 사냥감인 약자를 보면 가차없이 죽이고 잡아먹을지언정 자신보다 덩치가 크거나 힘이 쎈 상대방을 만나면 겁을 먹고 도망친다.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일대일 상황에서 토끼는 하이에나를 이길 수 없고, 하이에나는 사자를 이길 수 없고, 사자는 코끼리를 이길 수 없다. 이길 수 없는 상대를 건드려 봤자 자신이 다치거나 죽을 뿐이므로 건드리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괴롭히고 잡아먹는 대상은 자신보다 약한 것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부정적 견해[편집]
언제까지 독재자들의 분노는 정의로, 민중의 정의는 야만이나 반란으로 불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나는 민중을 학살하면서 전제군주를 용서하는 인류애를 알지 못합니다.
天は人の上に人を造らず、人の下に人を造らず。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 만들지 않았고, 사람 밑에 사람 만들지 않았다.[9]
건전한 국가에선 절대로 이를 정당화할 수 없으니,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첫째, 인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개념이라 받아줘서 국제 명분을 내세울 수 없다.
- 둘째, 문명에 적응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교류가 단절되고 격차가 벌어져 세상이 각박해지고어 종 치안에 상당량의 비용을 들여야 하기 하기 때문이다.
- 셋째, 강약약강을 옹호하는 분위기는 온갖 부정부패를 합법인양 인정하기에 행정이 잘 돌아갈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 넷째, 선진국부터는 문명 발전 양상이 인구수와 넘치는 자원을 교류하여 성장하는 방식보단, 지식을 쌓고 기술을 개발하여 국가의 경쟁력을 증대시키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강약약강은 표면상 잘못된 게 맞다. 인간의 존엄성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 중 하나인 자유, 민주, 평등, 박애 정신에 철저하게 반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정부가 상호확증파괴를 막기 위해 내세운 점이 바로 인권이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활동하려면 필히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명분이 없기 때문에 주류 국가와 우방국임을 증명하는 용도로 더 많은 비용을 할애해야 한다. 그럼 국제사회와의 소통을 단절하면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좋은 생각이 아니다. 국가가 무역을 포기하겠다는 소리는 평생 후진국으로 살겠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전에 다 같이 굶어죽겠지만. 물론 외교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내부적으로는 강약약강이 적용되긴 한다. 하지만, 이조차도 군사적 제재보단 명분과 경제를 통한 제재가 더욱 주류다. 군사적 제재보단 경제적 제재가 뒤처리가 깔끔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강약약강은 명백히 잘못된 게 맞다. 대한민국 헌법 제2장 제11조에 의거하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한데, 강약약강은 약자 및 소수자에 대한 차별 그 자체가 되니 헌법 정신에 정면도전하는 꼴이다. 현대 사회의 건전함은 약자 보호와 다양성 존중에서 나오는데 이를 없앤다면 사회가 각박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강약약강이 권력에 접촉되면 부정부패가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폐해는 해당 문서로.
기존에는 사람과의 교역은 면전으로 제한되었고 자원이 많이 부족했기에 문명을 발전시킬 때 적절히 안정된 인구수와 넘치는 자원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방식 이외엔 존재하지 않았다. 허나 과학혁명, 산업 혁명 등을 통해 인구수와 자원이 차고 넘치게 되었고 인터넷 등의 통신 매체를 통해 전근대 사회에 비해 매우 빠른 속도로으로 교역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더 이상 많은 자원만으로는 최선의 가치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많은 자원을 개발하여 다양한 상품으로 교역을 하는 것이 주류가 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 굳이 옛날 방식인 강약약강에 머물러야 할 합리적인 사유가 존재하는가?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
그리고 강약약강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이것이 힘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힘의 논리는 국가나 사회를 안정시킬 수 없다. 강한 자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는 논리는 사회적 혼란만 가중할 뿐이다. 서양에서는 서로마가 그러했고, 동양에서는 전국시대가 그러했다. 그래서 사회안정을 위해 서양은 기독교를, 동양을 유교라는 명분을 중심으로 사회를 안정화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명분은 지금 우리 현대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기독교적 가치관은 우리의 헌법, 인권의 기초적 개념으로 살아있다. 이러한 명분은 강약약강이라는 힘의 논리에서 사람들의 목숨을 유지시켜주었다. 현대의 개념에 비해서는 한참이나 부족했지만 이러한 개념이 있었기에 귀족들의 무자비한 폭력에서 민중을 보호할 수 있었다.[11]
게다가 이러한 힘의 논리는 결국 강자 자신에게도 장기적으로 위협이 된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늙고 쇠하기 마련이라 수십 년이 흐르면 새로운 강자가 탄생하고 기존의 강자들은 약자의 입장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이 시점이 되면 자신이 내세운 논리가 자신의 숨통을 물어뜯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하기 십상이다.
사족으로 옹호측에서는 비둘기파와 매파가 있어서 적절한 인구수와 잉여자원이 확보된다고 말하지만, 이 논리는 맬서스 트랩적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맬서스 트랩의 가장 큰 한계는 바로 기술혁신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사유를 할 수 있고, 그 사유를 기반으로 과학을 만들었다. 이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인류는 이 지구상에서 그 어떤 동물도 하지 못하는 공기 중에서 질소를 추출하는 능력이 있다. 옹호에서는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을 통해 사회가 발전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내시균형적 시각은 사실 인류의 진화와 발전 과정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인류의 발전 속도를 보면 되는데, 20세기 중반까지 인류의 발전 속도보다 지금 2020년의 발전 속도가 더 빠르다. 10년 전의 과학 기술이 1년만에 바뀌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가 올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비둘기파와 매파에 의한 균형이 아니라 인구수의 증가로 인해 과학 기술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늘어나, 연구에 투자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12] 1948년 이후 선진국에서는 비둘기파가 득세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과거보다 더 많은 잉여자원과 발전을 보여주고 있기에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5. 기타[편집]
장비가 만인지적의 용장이므로 그가 소인배가 아니고, 그러므로 장비가 행한 강약약강은 부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무관련성의 오류와 순환논증의 오류를 범했다. 먼저, 장비가 만인지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포도 장비에 못지않게 평가받는 용장이나 대표적인 소인배로 평가받는다. 용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인배가 아니라면 여포도 소인배가 아니게 된다.[13]
소인이란 군자의 상대개념으로,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만을 모아서 세력을 만들거나 목소리를 키우는 것을 말한다. 반면 군자는 특정한 사람의 사상에 함부로 공감하지 않고 또한 자신만의 생각에 동조해주는 사람만을 모으지 않는다. 즉 군자는 타인의 말을 잘 경청하는 자이며, 소인은 타인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자를 말한다.[14] 반면, 용장이란 적군과 맞써 싸우는데 있어서 두려움이 없이 나가 싸우거나 쉽게 도망치지 않는 장수를 말한다. 이러한 개념의 반대개념은 적군과 맞써 싸우는데 있어서 도망치는 장수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소인과 군자는 인품에 대한 부분이고, 용장은 군사적 재능에 관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군사적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인품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인품이 뛰어나다고 곧바로 군사적 재능을 갖춘 것도 아니다.
장비는 군사적 재능은 탁월했지만 인품은 심각하게 부족했다. 어떤 면에서는 졸장의 측면도 많이 보여주었다. 괜히 유비가 여러차례 장비에게 아랫사람을 잘 대해주어야 한다고 조언을 한 것이 아니다. 결국 장비가 만인지적의 칭호를 받았지만 그는 전장터가 아니라 침실에서 부하들의 손에 의해 유명을 달리했다.
소인이란 군자의 상대개념으로,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만을 모아서 세력을 만들거나 목소리를 키우는 것을 말한다. 반면 군자는 특정한 사람의 사상에 함부로 공감하지 않고 또한 자신만의 생각에 동조해주는 사람만을 모으지 않는다. 즉 군자는 타인의 말을 잘 경청하는 자이며, 소인은 타인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자를 말한다.[14] 반면, 용장이란 적군과 맞써 싸우는데 있어서 두려움이 없이 나가 싸우거나 쉽게 도망치지 않는 장수를 말한다. 이러한 개념의 반대개념은 적군과 맞써 싸우는데 있어서 도망치는 장수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소인과 군자는 인품에 대한 부분이고, 용장은 군사적 재능에 관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군사적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인품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인품이 뛰어나다고 곧바로 군사적 재능을 갖춘 것도 아니다.
장비는 군사적 재능은 탁월했지만 인품은 심각하게 부족했다. 어떤 면에서는 졸장의 측면도 많이 보여주었다. 괜히 유비가 여러차례 장비에게 아랫사람을 잘 대해주어야 한다고 조언을 한 것이 아니다. 결국 장비가 만인지적의 칭호를 받았지만 그는 전장터가 아니라 침실에서 부하들의 손에 의해 유명을 달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