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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곡동 황금장 여관 모녀 토막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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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447회 작성일 23-01-3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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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4년 8월 14일서울특별시 성북구 월곡동에서 모녀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암매장한 '월곡동 황금장 여관 모녀 토막 살인사건'의 범인. 황금장 여관을 운영하던 동거녀 전옥수[1](女, 당시 49세)와 그녀의 중학생 딸 이향정(당시 14세)을 살해한 후 시신을 매우 잔혹하게 훼손한 살인범이다. 잔혹한 범행으로 동년 12월 21일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사형 선고 이후 28년이 흐른 현재까지 집행되지 않고 수감 중이다. 죽음

성낙주의 범행은 비슷한 사건으로 1975년 이팔국 아내 살인 사건, 2019년의 고유정 사건, 그 외에도 용인 10대 엽기 살인사건2012년 오원춘 사건, 해외에서는 1988년 영국령 홍콩의 콘힐 남편 살인사건과 2008년 일본의 고토 맨션 행방불명 살인 사건이 꼽힐 정도로 매우 잔인했다. 그 때문인지 사건 당시에는 보도가 명확히 되지 않아 잔혹성에 비해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0년대 들어 이 성낙주를 매우 미화한 영화 마이 파더가 개봉하면서 조금 알려지게 되었다.

2. 생애[편집]

1951년[2]충청북도 제천군 제천읍(현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태어난 성낙주는 국민학교 졸업이 학력의 끝이고, 결혼하여 아들 3명을 낳았으나 1972년 군 입대 때문에[3] 처자식과 잠시 이별하였고, 복무 도중에 아내가 병사하였다.

전역 후 1977년에 출가해 태고종 종적으로 승려생활을 하였으나, 1984년에 승적을 박탈당했다. 그 뒤, 떠돌이 생활을 전전하다가 승려생활 때 배운 가락으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미아동[4]에서 철학관을 운영하였다.

2.1. 피해자 전옥수와의 만남[편집]

그러던 1993년 중순쯤, 사건의 피해자인 전옥수가 그의 철학관을 찾아 인생상담을 한 것을 계기로 서로 알게 되었다. 그때 성낙주는 전옥수가 남편 없이 자신 명의로 된 여관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였다.[5] 전옥수가 "허리가 안 좋다"고 하자 침과 뜸을 놔주고 지압시술을 해주다가 내연관계로 발전하였고, 이내 동거까지 하게 되었다. 성낙주는 아예 철학관을 접고 전옥수의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여관 주인장 전옥수는 무일푼으로 밥만 축내는 성낙주가 남자 구실을 제대로 못해서 마음에 안들어하였고[6], 시시건건 다툼이 잦아졌다.

2.2. 범행[편집]

이향정이 실종되기 하루 전인 8월 13일 저녁에 전옥수와 심하게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걸 지켜봤던 전옥수의 친딸 이향정(당시 만 14살, 중3)이 성낙주에게 “요즘 엄마랑 자주 싸우는데 그만 괴롭히고 이젠 집에서 나가달라”고 말했다. 이향정한테 면박을 당한 성낙주는 크게 분노하여, 이향정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8월 14일 오전 5시쯤 성낙주는 전옥수의 집을 찾아가 작은 방에서 혼자 자고 있던 이향정을 목을 졸라 살해했다. 살해한 시신을 욕실로 옮겨 식칼로 목과 팔, 다리 등을 36~38 차례로 토막낸것도 모자라 손가락 마디마디를 자른뒤, 손끝의 지문을 없애고, 피부 곳곳을 도려낸 뒤, 안면의 피부조직을 벗겨내 벗겨낸 살가죽을 잘게 잘라 변기에 버리는 엽기적인 행각을 보였다. 이후 살점들을 변기에 버린 것과 물청소로 인해 다음날 건물 물탱크가 바닥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후 토막난 검정 비닐봉지에 담은 후 종이상자에 나눠 담았다.[7]

그뒤, 자신의 이복동생 성 모에게 전화를 걸어 “고사를 지낸 돼지머리를 버려야 하니 도와 달라”고 했다. 이에 속은 이복동생이 자신의 그레이스를 종이상자와 같이 타고 오후 1시쯤, 북한강휴게소[8] 인근 야산에 이향정의 시신을 암매장했다.

성낙주는 살인을 은폐할 목적으로 미리 구매한 타자기로 이향정이 가출한 것처럼 메모를 작성하였다.[메모내용] 얼마 후, 주인장 전옥수는 그 메모지를 보고 딸이 가출한 걸로 믿고 경찰에 가출신고를 했다.

8월 21일 새벽 3시쯤, 성낙주는 여관 안내실에서 전옥수와 심하게 다퉜다. 그때 전옥수가 “재산도 없이 남자 구실도 못하는데 어떻게 당신을 믿고 사냐”고 말하자 이에 격분하였다.

성낙주는 오전 8시 쯤, 여관 107호에서 잠자던 전옥수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수술용 칼[10]로 시신을 토막낸 후 살점을 도려내서 정화조에 버렸고 나머지 뼈 등은 라면상자 3개에 나누어 담고 포장했다.

토막낸 시신이 든 상자는 여관 안내실 계단 밑에 숨겨뒀다가 다음 날 의붓형 김모(50세)에도 "고사지낸 돼지머리를 처리해야 되니 도와달라"고 거짓말을 한 뒤, 이에 속은 의붓형이 자신의 렌터카를 이용해 고속도로 공사장[11]에 포크레인을 동원해 암매장했다.

2.3. 체포[편집]

두 모녀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성낙주는 자신이 여관주인인 마냥 행세하였다. 전옥수의 친구 전영자가 “옥수 어디 갔느냐?”고 전화하자 성낙주는 “가출한 딸을 위해 에 불공 드리러갔다.”고 둘러댔다. 이에 수상하게 여긴 전영자가 경찰에 전옥수의 실종신고를 하였고, 수사에 착수한 서울종암경찰서 강력반이 실종신고 당일인 22일 10시에 모텔을 지키고 있던 성낙주를 연행하여 조사하였다.

진술과정에서 그는 불리한 진술이 나올때마다 눈을 감고 불경을 외우거나 변명과 모르쇠, 거짓말로 일관하여 수사에 혼선을 주었다. 경찰이 "전옥수가 불경을 드리러 간날 어디에 있었냐"고 물어봤으나, 성낙주는 "경동시장에서 장을 봤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하지만 성낙주의 짐보따리 안에서는 휴게소 영수증이 발견되었다. 더군다나 이향정이 남기고 간 것으로 알려진 쪽지에는 '옆'을 '엽'으로 잘못 표기한 글자들이 나왔고, '중학교 3학년인 이향정이 맞춤법을 틀릴 리가 없다'고 판단한 형사들은 성낙주에게 "당일 행적을 자술서에 쓰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옆'과 '없'을 쓰도록 유도한 결과 '옆'을 '엽'으로, '없'을 '업'으로 표기한 바람에, 쪽지는 성낙주가 쓴 가짜라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후 경동시장에서 수술용 메스를 구입한 것과 짐보따리에서 휴게소 영수증이 나온 증거들이 뒷받침하였고, 결국 24일 성낙주는 범행을 자백하였다. 8월 29일에 사건현장인 여관 앞에서 경찰과 주민 100여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현장검증을 받았다.관련영상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되고 1994년 12월 21일 서울형사지법 합의23부(김황식[12] 부장판사)는 검찰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했다.[13]

이후 사형수가 되어 광주교도소에 수감중이다. 선고 후 1997년까지 사형 집행이 실시되었지만 성낙주는 운 좋게 형집행을 피해서 지금도 복역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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