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성폭행' 피해자는 같은데 가해자 한 명은 유죄, 한 명은 무죄?[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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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조회 1,107회 작성일 22-04-04 11:03본문
성소수자 여성 장교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해군 대령에게 군사법원이 내린 무죄 판결이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됐다. 반면 같은 피해자를 여러 차례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소령에게는 무죄가 확정됐다. 동일인이 당한 연결된 사건을 두고 대법원 재판부별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달리 판단한 것이다.
피해자 측은 “일련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피해자 진술 신빙성에 대한 판단이 엇갈린 것은 모순”이라며 반발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31일 군 형법상 강간치상 등 혐의로 기소된 A대령(사건 당시 중령)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반면 같은 날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B소령의 무죄를 확정했다.
B소령은 2010년 9월부터 12월까지 직속부하로 함정근무를 하던 해군 장교 C씨를 10여 차례 성추행하고 2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C씨는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혔지만, B소령이 “네가 남자를 잘 몰라서 그런 거다. 가르쳐 주겠다”며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임신한 C씨는 당시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부대의 지휘관이던 A대령은 C씨가 B씨에게 당한 피해 사실을 알리자 상담을 빌미로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군 검찰은 2017년 C씨의 고소로 수사에 착수해 두 사람을 재판에 넘겼다. 사건 발생 7년 만이었다.
1심은 A대령, B소령의 혐의 사실을 인정해 각각 징역 8년,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사건 발생 후 7년이 지나 C씨의 기억을 신뢰하기 어려운 점, C씨가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폭행이나 협박을 당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특히 B소령의 경우 성추행·성폭행이 여러 차례, 여러 장소에서 벌어진 정황을 들어 폭행·협박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해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단은 엇갈렸다. A대령 사건 재판부는 C씨의 진술이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까지 일관된다며 신빙성을 인정했다.
[사설]재판부별로 ‘해군 성폭력’ 가해자 유무죄 엇갈린 대법원
또 “A대령의 행위가 기습적으로 이뤄진 점, 당시 피해자는 군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급장교로서 평소 지휘관인 A대령의 지시에 절대복종할 수 밖에 없는 지위에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C씨가 저항이 불가능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B소령 사건 재판부는 C씨의 진술 신빙성이 부족하고, 검찰의 혐의 입증이 충분치 않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과 A대령 사건은 사건의 구체적인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피해자의 진술 등이 서로 다르므로 범죄 성립 여부가 달리 판단될 수 있다”고 했다.
시민단체는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엇갈린 판단을 규탄했다. C씨는 도지현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가 대독한 입장문에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성적 소수자라는 점을 알고도 강간·강제추행을 일삼고 결국 중절수술까지 하게 한 자를 무죄로 판단한 대법원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며 “제가 겪어야만 했던 그 날의 고통, 수많은 날의 기억을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인정하지 않은 법원의 판결을 저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C씨의 법률 대리를 맡은 박인숙 변호사는 “동떨어지지 않은 일련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다른 사건에 대해선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했다.
재판부의 성인지감수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재판에서 피해자의 성 정체성에 관한 판단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연인이었다는 가해자 주장과 달리 성관계가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은 건 재판부의 감수성 부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